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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생활 이야기

미국 이민과 등교 첫날

by minchelink 2024. 5.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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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되지 않아 미국으로 이민을 왔습니다.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넘어오면서 막 적응하던 시기이고 새로 사귄 친구들과도 아직 많이 친해지기 전이라 아쉬운 감정이 그렇게 크진 않았습니다.  혼자 조기 유학을 가는 것도 아니었고 가족들과 함께 떠나는 것이어서 두려운 마음도 크게 들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미국에 도착했고 거기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미국에 이민 와서 중학교 입학하기

 

처음 미국에 도착한 시기가 여름방학 시기라 미국 중학교에 입학하기 전 한 달 정도 여기저기 다니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우리 가족이 미국에서 정착한 곳은 미서부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해안 도시여서 바닷가를 자주 갔었고 입주한 아파트에서 생활하는데 필요한 가구나 옷 등을 사고 정리하면서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렇게 편하게 지내다가 학교가 시작하기 한주 전부터는 불안한 마음을 가지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학교 등록은 부모님과 함께 학교에 방문하여 미리 절차를 진행해 모든 준비는 마친 상황이었으나 미국 사람과 영어로 대화해 본 적도 없고 거의 없는 데다가 모든 수업이 영어로 진행된다는 현실이 더욱 무겁게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불안한 마음을 갖고 시간을 보내다가 입학식 날이 되어 미국 중학교에 처음으로 등교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미국 중학교에 등교해 보니 한국처럼 지정된 교실에서 매 과목 다른 선생님들이 들어와 수업을 하는게하는 게 아니라 (초등학교의 경우는 한국과 같았지만) 대학교처럼 각 수업마다 다른 교실로 이동하며 수업을 받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학 첫날에는 좀 일찍 등교하여 자기 이름이 적힌 수업표를 찾아 자기에게 배정된 과목과 교실을 찾아 매 교시마다 알아서 찾아가야 했습니다.  당시 입학 첫날 학교에 처음 와본 것이기 때문에 교실을 찾아가는데 애를 많이 먹어 첫날 오전 수업은 거의 지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요즘에는 워낙 등록도 전산으로 진행하고 사전에 오리엔테이션 진행을 하는 등 신입생 지원 프로그램이 많기 때문에 제가 처음 왔을 때보다는 첫날 적응 하는 게 훨씬 수월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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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의 첫 수업과 친구들

 

그렇게 수업에 들어가니 교과서를 나눠주고 수업을 진행하는데 알아듣는 내용이 거의 없어서 퍽 난감했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레 머리가 검은 동양 아이들 중 한국인으로 보이거나 한국 성을 가진 친구들을 눈여겨 보았다가 수업 마친 후 말을 걸면서 친구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당시에는 비슷한 시기에 한국에서 이민 온 친구들이 많아서 자연스레 그 아이들과 친해지며 무리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그중에는 저보다 1~2년 정도 먼저 미국에 온 아이들도 있었는데 당시 제 기준으로 그 아이들은 꽤 유창한 영어를 구사할 수 있었는데 서양 아이들과도 자연스럽게 웃고 얘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부러움을 느꼈습니다.  그걸 보면서 나도 어서 저렇게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으며 하루빨리 그 아이들과 친해지려고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학교의 한국 아이들 중에는 저와 비슷한 시기에 미국에 온 1.5세들 말고도 아예 미국에서 태어났거나 아주 어릴 때 미국에 온 2세 아이들도 많았는데 그 아이들은 접근하기가 좀 어려웠습니다.  지나서 생각해보면 그 아이들도 괜히 우리 같은 아이들과 친해지면 이것저것 도와주면서 피곤할 일이 많다고 생각했을 것이므로 일부는 저와 같이 갓 미국에 도착한 아이들을 일부러 모른 척하거나 말을 걸어도 한국말을 못 한다고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럴 땐 솔직히 좀 당황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저처럼 아무것도 몰라 우와좌왕하는 아이들에게 도움 주려는 친구들도 많이 있었기 때문에 그럭저럭 적응을 할 수 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미국의 중학교의 첫날을 시작 하였고 새로운 세상에 대한 두려움은 의지할 수 있는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의 존재로 조금씩 옅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모두 어렵고 두려울 때 서로에게 의지가 되어 주었고 조금이라도 알거나 듣는 정보가 있으면 서로 공유하며 도와주려 했던 소중한 관계들은 이후 미국 생활을 이어나가는 동안 더욱 단단해지기도 했고 때때로 변화를 맞이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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