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엘에이 서쪽, 정확히는 베버리힐스 남서쪽의 Pico길 선상에 있는 허름한 건물에 THE TERIYAKI HOUSE PICO라는 간판을 달고 있는 작은 가게가 있습니다. 오래된 동네에 있는 낡은 건물 하나, 밖에서 보면 간단하고 싼 점심을 파는 곳 같고 고급 음식점이 풍기는 분위기라고는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알고 보면 이 가게는 가고 싶다고 해서 아무나 갈 수 없고 가게 주인이 손님을 골라 받는, 엘에이에서 가장 비밀스러운 식당 중에 하나인 토토라쿠(Totoraku)입니다.
자부심 하나로 살아가는 일본인 세프 - Oyama, Kaz
토토라쿠의 주인은 일본인 카즈 오야마 사장입니다. 고기, 특히 소고기를 다루는데 일가견이 있는 오야마 사장은 1999년 West LA 지역의 Pico Blvd라는 길을 지나다가 한 유태인 건물주가 세입자를 구한다는 사인을 걸고 있는 것을 보고 차를 돌립니다. 당시 카즈 사장은 엘에이 유명 초밥집에서 일하던 중 단골손님의 제안으로 독립을 했다가 사기를 당해 전재산을 날린 상황이었습니다. 아내와 갓 어린 아들을 먹여 살려야했던 카즈 사장은 여기저기서 돈을 빌려 이 자리를 임대하곤 The Teriyaki House Pico라는 작은 가게를 열었습니다.
임대계약을 하고 남은 돈이 거의 없었던 카즈 사장은 인테리어 공사를 할 여력이 없어 테이블과 의자 몇개만 놓고 테리야키 장사를 시작 했습니다. 당시 팔았던 메뉴는 간판 그대로 비프, 치킨, 야채가 들어간 테리야키 음식으로 일본이나 오사카에 있는 싸구려 점심 가게와 다를바 없었습니다. 다행히 그 곳은 과거에 햄버거 가게였기 때문에 크게 손볼 필요없이 궁색하게나마 가게를 운영할 수 있었습니다.
연속되는 시련, 그리고 화려한 부활
안타깝게도 테리야키 사업은 잘 되지 않았습니다. 가게가 입점한 지역은 웨스트 엘에이의 식당가로 유명한 Sawtelle도 아니었고 허름하고 을씨년스런 건물들만 모여있는 변두리라 손님이 거의 들지 않았습니다. 주변 상인들은 왜 이런데다가 가게를 차렸냐고 비웃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가게는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카즈 사장은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절박함이 있었고 또한 셰프로서의 자부심이 대단한 사람 이었기에 다른 시도를 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현재 오야마 사장의 토토라쿠는 엘에이에서 예약하기가 제일 어려운 가게가 되었습니다. 가게 자리도 그대로고 내부도 그대로인데 이제는 손님들이 오고 싶어도 올 수 없는 "신비한 가게"가 된 것입니다. 테리야키 가게를 닫고나서 카즈 사장은 메뉴를 전면적으로 손보고 일본식 코스 요리인 "가이세키" 방식으로 세심하게 구성하여 현재의 고기구이 전문점인 "야키니쿠" 가게로 탈바꿈 시켰습니다. 말 그대로 가게 내부만 빼고는 전부 다 바꿔 버린것입니다.
구이전문점이 되었지만 테리야키 장사할 때 쓰던 비좁은 주방에서 음식 준비를 하였으며, 돈이 없어 인테리어 공사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불판 대신 일본식 숯불 화로를 손님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고기를 굽게 하였습니다. 그렇게 하고 당시 1인당 140달러의 가격을 받았습니다. 현재는 1인당 300달러 가까이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매일 예약 손님이 끊이지 않는 숨은 보석같은 식당이 되었습니다.
엘에이에서 가장 비밀스러운 식당이 된 토토라쿠
토토라쿠는 철저히 예약제로 운영 됩니다. 만약 토토라쿠의 소문을 듣고 저녁 오픈 시간에 맞춰 식당을 찾으면 '예약이 꽉 차서 자리가 없으니 죄송합니다' 라는 말을 듣게 될 것입니다. 여타 다른 식당들과 달리 토토라쿠는 어떤 광고도 하지 않으며 트위터, 페이스북, Open Table (미국의 식당 예약 사이트) 등의 SNS도 일체 사용하지 않습니다. 사실 카즈 사장은 식당이 유명해지는 걸 원치도 않고 미슐랭 같은 식당 리뷰 같은 것에도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카즈 사장의 운영 방식은 독특하고 괴짜스럽습니다. 토토라쿠에 오고 싶으면 반드시 예약을 해야 하는데 식당 전화 번호로 전화를 해도 연결이 잘 안될 뿐더러 예약도 잘 받아주질 않습니다. 예약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카즈 사장의 명함에 손으로 쓴 전화번호 뿐인데 이걸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은 식당 손님들 밖에 없습니다. 결국 기존 손님들의 소개나 초대가 있어야 비로소 발을 들여볼 수 있는 자격이 되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가게의 손님은 카즈 사장이 선택하는 겁니다.
토토라쿠의 음식, 독특한 점들
토토라쿠의 메뉴는 앞서 말씀드린 대로 일본식 화로에 석쇠를 얹어 고기를 구워먹는 야키니쿠 코스입니다. 따로 메뉴도 없고 가격표도 없습니다. 애피타이저와 고기, 디저트는 전부 셰프의 재량입니다. 일단 전채요리는 푸아그라, 사시미, 그리고 야채젤로 같은 좀 신기한 것들도 나옵니다. 이후 몇가지 종류의 소고기 타르타르, 즉 육회가 서빙된 후 테이블 위에 화로가 놓이고 고기가 나오기 시작합니다. 고기 종류도 여러가지가 연속해서 나오는데 고기의 질은 다른 고기집과 비교가 안되게 좋다고 합니다. 물론 1인분에 300달러 가까운 가격이라면 그건 당연한 거라고 생각이 들긴 합니다.
특이한 점 한가지는, 토토라쿠는 주류 면허가 없기 때문에 주류는 손님들이 직접 가지고 온다고 하는데 좋은 와인을 가지고 와서 마시고 주인과 함께 마시는게 이 가게의 불문율이라고 합니다. 카즈 사장이 와인을 정말 사랑하는데 이 가게에 오는 손님들 중에는 유명인도 많고 유명 셰프들도 많기 때문에 캘리포니아 고급 와인인 오퍼스나 케이머스, 도미누스 등은 기본이고 샤토 무통 로쉴드, 샤토 라투르 같은 프랑스 보르도 5대 샤토를 갖고 오는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개중에는 나파밸리의 컬트 와인인 "스크리밍 이글" 같은 초고가 와인을 가지고 오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좋은 와인을 준 손님에게는 자신의 전화번호가 적힌 명함을 건내주는데 이렇게 되면 이 손님은 비로소 토토라쿠의 손님으로 인정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 손님이 다른 사람들을 데려와도 된다고 카즈 사장이 허락을 해주는 것입니다. 만약 와인이 별로 인상적이지 않았다면 그 손님에게는 굳이 명함을 주지 않는다고도 알려져 있습니다.
토토라쿠의 지속적인 번영을 기원함
현재 토토라쿠에는 카즈 사장과 카즈 사장의 아내, 그리고 이제는 30대 후반이 된 카즈 사장의 아들이 중심이 되어 꾸려 나가고 있습니다. 비좁은 가게에 예약 손님들로 꽉 차고, 친절하긴 하지만 일손이 달려서 완벽한 고객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고 하기도 어렵고, 가격도 무척 비싼 가게지만 그래도 단골들은 토토라쿠를 절대적으로 사랑하며 카즈 사장을 응원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과거 메이저리그 일본인 스타였던 "스즈키 이치로"가 엘에이에 일주일 정도 들른 적이 있는데 토토라쿠에서 무려 다섯번이나 저녁 식사를 했다고 합니다. 문턱이 정말로 높고 언제 한번 가보기도 힘든 곳이겠지만 혹시 기회가 되신다면 한번 방문 하셔서 질 좋은 고기를 좋은 와인에 곁들여 토토라쿠만의 독특한 분위기와 문화에 흠뻑 젖어 보시는걸 추천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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